야설 야동

해질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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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따라 모든 사물들이 슬퍼보인다.

내 기분을 알고 위로해 주는 건지..

벌써 한 달째 있어야 할 생리가 보이지 않아 고민하던 끝에

병원을 찾았다.

잠시 망설이던 의사의 말.

폐경깁니다.

하나 하나 주름처럼 늘어가는 나이를 헤아리며

머잖아 이런 날이 오리라는 것은 생각했었지만, 이건 마치

사형선고 같다.

여성성의 사형선고...

이제 여자가 아닌 사람이 된다는 것이 이렇게 날 슬프게 할 줄 몰랐다.

적어도 5년전에만 해도,

이 지긋지긋한 거 언제 끝나나 하는 생각으로 은근히 기다려 왔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 그것이 되돌릴 수 없는 현실이 되고 보니

그런 생각들이 얼마나 큰 자만이었는지 알겠다.

의사에게 사정해 호르몬제를 한 움큼 얻어왔다.

약에 의지해서라도 당장은 나의 여성을 유지하고 싶다.

하지만, 그런 의지의 한 끝에는

그 알약을 볼 때마다 되려 우울해지곤 하는 내 속내가 어김없이 자리해 있다.

우리 부부는 벌써 6년째 부부관계가 없다.

너무 일찍 고개를 숙여버린 그이를

처음에는 연민으로 감싸주다가

나중에는 급기야 그 일로 구박을 하기에 이르렀다.

차라리 창피하더라도 병원에 가봐야 겠다고 생각한 끝에 몇 년 전

우리는 서로 머쓱해하며 병원을 찾았었다.

여러가지 정황을 듣고, 검사를 마친 의사의 진단은 단호했다.

심인성입니다.

약도 듣지 않는다는 심인성 발기부전. 결국 원인은 나한테 있던 것이었나.

그간 미안한 기색이라도 갖으며 생활하던 그이는

의사의 한 마디에 이제 더이상 꿇릴 것이 없다는 듯 너무나 당당해졌다.

어떤 사고방식이 그런 결과를 초래했는지, 그 속에 들어갔다 나오지 않는 이상

나는 절대로 이해하지 못할 것 같다.

사실,

그가 그렇게 된 데는 내 책임이 크다.

젊은 시절, 착하고 순진하기만 했지, 요리 조리 계산하는 데는 서툴렀던 이 사람이

여러 차례 사기를 당하고, 보증을 잘못 서고 하는 바람에

우리 가정은 크나큰 위기를 겪었었다.

그 이후, 집안 대 소사의 모든 경제권은 내게로 넘어왔고,

자식은 물론, 남편까지도 경제적인 모든 선택은 내게 결제를 받아야 했다.

자연히 경제권 이외의 영향력도 내게 기울어질 수 밖에 없었다.

그럴수록 남편을 더 배려하고 위신을 세워줘야 한다는 생각은 있었지만,

마음은 마음일 뿐 행동은 그렇게 하질 못했던 것이다.

그는 당연히 의기소침해질 수 밖에 없었고, 그런 남편이 가끔 한심해보이기까지 했다.

그 역시, 남성성을 상실한 그 때 ,

틀림없이 지금의 나 이상으로 더 심각한 괴로움을 겪었을 것이다.

그걸 전혀 몰랐다고는 말할 수 없겠지. 그럼에도 난 그것을 남의 일인양 바라보기만 하고,

채워지지 않는 성욕 때문에 잔소리만 늘어놓곤 했다.

내가 먼저

조금만 더 사랑하고, 조금만 더 이해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이 끊임없이 밀려든다.

이제 와서 이런 후회를 한 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한 때 우리는 얼마나 행복했었나.

처음 맞선으로 그를 만났을 때는, 뭐 그냥 평범한 느낌이었다.

그런 그가 그 먼 길을 일주일이 멀다하고 달려와 얼굴 한 번 보고 행복해하고,

예비군 군복도 채 벗어던지지 못한 채 부랴부랴 달려와 그냥 웃고만 있고...

그런 점이 나보다도 우리 부모님 마음에 더 쏙 들어

선본지 1년만에 결혼식을 올렸던 것이다.

젊어서의 나는 여기저기서 예쁘단 소릴 제법 듣던 외모였다.

( 어느날, 맞사위의 지갑 속에 내 젊었을 적 사진이 코팅되어 들어있는 것을 보고는

얼마나 당황했는지 모른다. 딸 말로는 우리 장모님 미인이시라며 아는 사람마다 꺼내 자랑한다고 한다.

아내도 아닌 장모님 사진을 넣어갖고 다니는 사위라니... )

그래서인지,

동네에서도 신랑 친구들은 노골적으로 부러운 시선을 보냈고,

그 때문에 더 의기양양해 어깨가 으쓱하던 그였다.

젊어서의 그는 색광이었다.

색광의 기준이 어떤지는 잘 모르겠으나, 적어도 내게는 그렇게만 보였다.

가난한 시골, 허름한 부엌에서 저녁을 준비하고 있으면, 어느새 들어와 뒤에서 안아주기 일쑤였고,

그러다 내친 김에 흙바닥에 날 눕히곤 헥헥거리기도 했다.

누가 들어올까 무서워 구멍 숭숭 뚫린 나무 문만 바라보며 만류하고 있어도,

그는 욕심을 끝끝내 다 채워야만 내려오곤 했다.

그 진땀나던 순간이 그 때는 분명 곤욕이었지만,

이제는 날 웃을 수 있게 하는 소중한 추억이 되었다.

나는 아이를 둘이나 낳고 나서야 섹스의 느낌을 알게 되었다.

점점 경험이 쌓일수록 깊어지는 흥분과

그럴수록 더 좋아하는 남편의 정성어린 손길.

나중에는 아이가 옆에 자고 있어도 이불 속에서 둘이 일을 치르기 일쑤였고,

그러고 나서는 비록 아직 아무것도 모를 나이의 아이기는 해도

엄마로서 너무 미안해지곤 했다.

밭일을 하다가도 묘한 눈길이 마주치면,

까지 내내 마음이 심란하고, 다른 덴 전혀 집중이 되질 않곤 했는데

그런 날 저녁이면 어김없이 남편과 나는 대단하다고 밖에 할 수 없는 밤을 즐길 수 있었다.

그러던 그였다.

그러던 그가 남성을 잃고, 이제 나도 여자로서의 의미를 상실해 버린 것이다.

이 나이에 임신을 할 것도 아니건만, 그런 해묵은 논리에 상관없이

그 상실감은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마음의 구멍을 뚫어놓고야 말았다.

그의 남성을 되살리고. 나의 욕구도 채워줄 무언가의 방법을 찾아봐야겠다.

이대로 부부로서의 생활을 마감하기에는 우리의 지난 날들이 너무 아름답다.

인생의 을, 그 시기에 맞게 즐길 수 있는 방법을

함께 찾아보아야 겠다.

나의 여성은, 그리고 그이의 남성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